얼마 전 잠깐 들른 교보문고에서 정말로 보석같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시류에 편승하여 쉽게 쓰인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마치 우연처럼 내게 다가왔다.
서점 속을 유영하듯 거닐던 내게, 인문학 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인문학은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찔러보는 건 자유이니 한번 거침없이 다가가봤다.
이번 트렌드는 글쓰기였다.
한 철을 노리고 나온 책들이 갖가지 자극적인 문장들로 글쓰기를 위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 같은 문외한은 고개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의 소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문장은 그리 대단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쓰면 된다."
아직 책의 도입부를 읽고 있는 중이지만, 나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 책에 나온 보석 같은 문장을 소개한다.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이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아!
나는 날로 몸이 꺼져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찾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 일으키기 어렵겠다.
형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형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에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 보내다오.
형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
형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 다오. 기다리마.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문장은 아름다웠고, 글쓰기는 또다시 동경이 되었다.